허명욱, 사유감각
Huh MyoungWook, Sense of Contemplation
2026.01.30 ㅡ 03.29
LAYR × 허명욱 프로젝트는 시간의 축적에서 감각의 현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미학적 여정을 다룬다.
수십 차례 반복되는 허명욱의 ‘칠(漆)’은 그의 호흡과 일상의 리듬을 따라 표면 위에 스며들고,
그렇게 형성된 층위는 물질을 넘어 작가가 지나온 시간을 품은 지층처럼 남는다.
매끈하게 정제된 화면은 시선의 각도에 따라 미세한 변화를 드러내며,
그 안에 축적된 정서는 고요한 깊이로 머문다.
전시 〈사유감각〉은 이러한 시간의 축적이 하나의 경험으로 전환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작품에 내재된 정서는 색의 온도와 빛의 방향 같은 물리적 요소를 통해 관람의 지각으로
옮겨가며 기억과 감정, 시간이 한 지점에서 응결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겹겹이 쌓인 색은 손길에 따른 변주 속에서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고,
화면 위에 남은 시간은 관람자의 경험 안에서 다시 구성된다.
작품이 놓인 자리와 관람자가 머무는 순간이 교차하며 그 위에는 또 하나의 시간과 정서가 더해진다.
전시는 이처럼 예술이 내면의 밀도에서 출발해 일상의 감각으로
확장되는 장면을 하나의 공간 안에 펼쳐 보인다.
LAYR × 허명욱 프로젝트는 시간의 축적에서 감각의 현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미학적 여정을 다룬다.
수십 차례 반복되는 허명욱의 ‘칠(漆)’은 그의 호흡과 일상의 리듬을
따라 표면 위에 스며들고, 그렇게 형성된 층위는 물질을 넘어
작가가 지나온 시간을 품은 지층처럼 남는다.
매끈하게 정제된 화면은 시선의 각도에 따라 미세한 변화를 드러내며,
그 안에 축적된 정서는 고요한 깊이로 머문다.
전시 〈사유감각〉은 이러한 시간의 축적이 하나의 경험으로
전환되는 지점에 주목한다. 작품에 내재된 정서는 색의 온도와 빛의 방향 같은
물리적 요소를 통해 관람의 지각으로 옮겨가며 기억과 감정,
시간이 한 지점에서 응결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겹겹이 쌓인 색은 손길에 따른 변주 속에서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고,
화면 위에 남은 시간은 관람자의 경험 안에서 다시 구성된다.
작품이 놓인 자리와 관람자가 머무는 순간이 교차하며
그 위에는 또 하나의 시간과 정서가 더해진다.
전시는 이처럼 예술이 내면의 밀도에서 출발해 일상의 감각으로
확장되는 장면을 하나의 공간 안에 펼쳐 보인다.
작가노트
시간의 기록과 수집, 응집된 시간의 무게
철저한 기록 습관, 사물 뿐 아니라 작업물들도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수집에 대한 애착, 이러한 것들은 타고난 천성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작업에 대한 진지한 시간이 그저 휘발되어 날아갈까 하는 두려움도 큰 것 같다.
매일 만드는 '그날의 색'은 매번 배합이 달라서 똑같이 다시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모아두기 적당한 길이의 스틱에 색과 날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색을 만들고 칠했던 나의 조형적 행위가 머물렀던
'시간'에 대한 기록과 수집'이다.
색의 시간을 나열하며 엮어가는 작업 과정은 색이 존재했던
그 시간을 수집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수평으로 연결하는 방법 뿐 아니라 스틱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한데 모아 묶어 두니 응집의 형태로 시각화 된다.
스틱을 묶는 철근을 최소화하여 최대한 자연스러운 조형적 덩어리를
연출하고자 했다. 스틱시리즈 작업은 매일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무게가
얼마나 거대하고 무거운지에 대한 깊은 고민,
그리고 어떤 시각적 표현이 가능한지에 대한 작업연구의 흔적이다.
시간과 조형적 행위를 겪어낸 흔적
내게 익숙한 재료인 금속에서부터 옻칠의 실험과 연구는 시작되었다.
강판 표면에 밑 작업을 하고 나서 그 위로 다른 색이 여러 번의 붓질을
통해 시간차를 두고 중첩된다. 칠하고 다음 칠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다림은 나에게 또 다른 작업을 시작하는 시간이 된다.
그 때문에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때론 쌓아 올린 색들 위로 과감하게 흑칠을 덮어 버리기도 하고,
면을 나누어 다른 색의 칠들을 중첩하기도 한다.
양쪽 가장자리에서 면의 중간으로 밀어내면서 칠을 중첩하는데,
그때 면의 중간에서 선으로 쌓이는 칠의 뭉침은 자연스레 면을 두개로 분할한다.
(중략)
축적된 시간의 조형적 덩어리
칠과 건조 과정을 반복해서 겪어내면 옻칠 스스로 대단한 내구성과 힘을 가진다.
두께가 얇으면서 유연한 천과 같은 표면에 칠이 더해지면 천 스스로 부피감을
가지고 단단해지면서 완전히 다른 매체가 되는 것이다.
여러 평면 매체 표면에 칠을 연구해보자면,
천 위의 옻칠은 천 스스로 칠을 머금었다가 색을 발하기 때문에
작업 과정 속 기다림이 다른 재료보다 특히 흥미롭다.
색이 흡수되어 머무르는 시간과 다시 발하기를 기다리는 시간
이 모든 과정이 작업이다. 올 사이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칠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입체적이고 자연스러운 색감을 자아낸다.
천과의 작업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매우 유연한 실험들이 가능하다.
다양한 반복적 무늬와 질감을 위해 인쇄의 인판을 만들듯 밑 작업을 시작한다.
예를 들어 못, 쇠구슬 등과 같은 다양한 철물들을 규칙적으로 배열,
또는 금속을 직접 가공하고 용접해서 패턴을 만들어 베이스 판을 제작한다.
탁본을 뜨듯이 베이스 위에 천을 덮고 그 위에 칠을 하면
아래에 있는 반복적인 패턴의 질감과 무늬가 천 위에 드러난다.
직접 만든 다양한 크기의 베이스 위에 작업하는데,
특히 캔버스 150호 정도의 넓은 천 표면에 칠을 올리는 과정은 호흡도
길어야 하고 체력적 수고가 보통 드는게 아니다.
첫 시작은 미리 제작된 베이스 위에 천을 올리고 찹쌀 풀과 옻칠을
1:1로 섞어 붙인 후 건조한다. 그 위에 생칠을 하고 마르기를 기다린다.
충분히 마르고 나면 토회로 천의 올 사이사이 눈매 메우기를 하고
메운 자리가 잘 건조되면 사포질을 하여 표면을 재정비한다.
사포질이 끝나면 다시 생칠을 올려 지금까지의 표면 작업들이
서로 잘 흡수되어 고착되게 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겪어낸 비로소
그 ‘한 장의 천’이 첫 번째 ‘켜’를 만든다.
그 위로 새로운 천을 올려 똑같은 또는 더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
다음 ‘켜‘를 쌓는다. ‘켜’가 쌓일수록 맨 아래 베이스의 반복적인
무늬는 더욱 분명하게 표면 위에 도드라진다.
‘수 겹에서 혹은 수십 겹’이 차곡히 그 위에 포개어진다.
겹쳐진 천들을 베이스에서 떼어내어 보면 더 이상 그들은 각각이 아닌
물리적 무게와 공간적 부피를 가지는 하나의 ‘조형적 덩어리’가 된다.
옻칠은 건조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그 물성 그대로에 순응하며
기다리기 때문에 이 모든 작업 과정이 반복되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과거의 모든 서사를 머금은 묵직하고 아득한 색과
두터운 표면이 바로 그 고된 시간의 흔적이다.
이를 앞에 두고 지나간 서사를 추측해 보는 머무름의 시간은
나의 조형적 행위가 머물렀던 그 시간과 비례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작업을 구상하기 전, 머릿속에 떠올려 보는 작품의 완성된 이미지나
분위기의 섣부른 상상보다 재료 앞에서 내 손과 발은 더 빠르게 움직인다.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관념’이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려는
나의 조형적 행위의 ‘관성’이 나의 작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하다 보니 우연히…’라고 하기에는 나의 의지와 수고가 서운하다.
우연 역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그날의 색’을 만들고 칠하고 건조되기를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그를 기록하는 일상적 습관이 차곡히 쌓여 가능하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내 작업의 안과 밖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게 시간차를 두고 반복적으로 쌓여가는 작업 과정에는
여러 겹의 ‘켜’가 존재한다. 그 ‘켜’에는 인위적인
나의 조형적 행위 뿐 아니라 자연스레 흐르는 ‘시간’이 함께 축적된다.
ㅡ 작가 허명욱
작가노트
시간의 기록과 수집, 응집된 시간의 무게
철저한 기록 습관, 사물 뿐 아니라 작업물들도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수집에 대한 애착, 이러한 것들은 타고난 천성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작업에 대한 진지한 시간이 그저 휘발되어 날아갈까 하는 두려움도 큰 것 같다. 매일 만드는 '그날의 색'은 매번 배합이 달라서 똑같이 다시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모아두기 적당한 길이의 스틱에 색과 날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색을 만들고 칠했던 나의 조형적 행위가 머물렀던 '시간에 대한 기록과 수집'이다. 색의 시간을 나열하며 엮어가는 작업 과정은 색이 존재했던 그 시간을 수집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수평으로 연결하는 방법 뿐 아니라 스틱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한데 모아 묶어 두니 응집의 형태로 시각화 된다. 스틱을 묶는 철근을 최소화하여 최대한 자연스러운 조형적 덩어리를 연출하고자 했다. 스틱시리즈 작업은 매일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무게가 얼마나 거대하고 무거운지에 대한 깊은 고민, 그리고 어떤 시각적 표현이 가능한지에 대한 작업연구의 흔적이다.
시간과 조형적 행위를 겪어낸 흔적
내게 익숙한 재료인 금속에서부터 옻칠의 실험과 연구는 시작되었다. 강판 표면에 밑 작업을 하고 나서 그 위로 다른 색이 여러 번의 붓질을 통해 시간차를 두고 중첩된다. 칠하고 다음 칠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다림은 나에게 또 다른 작업을 시작하는 시간이 된다. 그 때문에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때론 쌓아 올린 색들 위로 과감하게 흑칠을 덮어 버리기도 하고, 면을 나누어 다른 색의 칠들을 중첩하기도 한다. 양쪽 가장자리에서 면의 중간으로 밀어내면서 칠을 중첩하는데, 그때 면의 중간에서 선으로 쌓이는 칠의 뭉침은 자연스레 면을 두개로 분할한다.
(중략)
축적된 시간의 조형적 덩어리
칠과 건조 과정을 반복해서 겪어내면 옻칠 스스로 대단한 내구성과 힘을 가진다. 두께가 얇으면서 유연한 천과 같은 표면에 칠이 더해지면 천 스스로 부피감을 가지고 단단해지면서 완전히 다른 매체가 되는 것이다. 여러 평면 매체 표면에 칠을 연구해보자면, 천 위의 옻칠은 천 스스로 칠을 머금었다가 색을 발하기 때문에 작업 과정 속 기다림이 다른 재료보다 특히 흥미롭다. 색이 흡수되어 머무르는 시간과 다시 발하기를 기다리는 시간 이 모든 과정이 작업이다. 올 사이사이에 비집고 들어간 칠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입체적이고 자연스러운 색감을 자아낸다.
천과의 작업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매우 유연한 실험들이 가능하다. 다양한 반복적 무늬와 질감을 위해 인쇄의 인판을 만들듯 밑 작업을 시작한다. 예를 들어 못, 쇠구슬 등과 같은 다양한 철물들을 규칙적으로 배열, 또는 금속을 직접 가공하고 용접해서 패턴을 만들어 베이스 판을 제작한다. 탁본을 뜨듯이 베이스 위에 천을 덮고 그 위에 칠을 하면 아래에 있는 반복적인 패턴의 질감과 무늬가 천 위에 드러난다.
직접 만든 다양한 크기의 베이스 위에 작업하는데, 특히 캔버스 150호 정도의 넓은 천 표면에 칠을 올리는 과정은 호흡도 길어야 하고 체력적 수고가 보통 드는게 아니다. 첫 시작은 미리 제작된 베이스 위에 천을 올리고 찹쌀 풀과 옻칠을 1:1로 섞어 붙인 후 건조한다. 그 위에 생칠을 하고 마르기를 기다린다. 충분히 마르고 나면 토회로 천의 올 사이사이 눈매 메우기를 하고 메운 자리가 잘 건조되면 사포질을 하여 표면을 재정비한다. 사포질이 끝나면 다시 생칠을 올려 지금까지의 표면 작업들이 서로 잘 흡수되어 고착되게 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겪어낸 비로소 그 ‘한 장의 천’이 첫 번째 ‘켜’를 만든다. 그 위로 새로운 천을 올려 똑같은 또는 더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 다음 ‘켜‘를 쌓는다. ‘켜’가 쌓일수록 맨 아래 베이스의 반복적인 무늬는 더욱 분명하게 표면 위에 도드라진다. ‘수 겹에서 혹은 수십 겹’이 차곡히 그 위에 포개어진다. 겹쳐진 천들을 베이스에서 떼어내어 보면 더 이상 그들은 각각이 아닌 물리적 무게와 공간적 부피를 가지는 하나의 ‘조형적 덩어리’가 된다.
옻칠은 건조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그 물성 그대로에 순응하며 기다리기 때문에 이 모든 작업 과정이 반복되려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과거의 모든 서사를 머금은 묵직하고 아득한 색과 두터운 표면이 바로 그 고된 시간의 흔적이다. 이를 앞에 두고 지나간 서사를 추측해 보는 머무름의 시간은 나의 조형적 행위가 머물렀던 그 시간과 비례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작업을 구상하기 전, 머릿속에 떠올려 보는 작품의 완성된 이미지나 분위기의 섣부른 상상보다 재료 앞에서 내 손과 발은 더 빠르게 움직인다.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관념’이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려는 나의 조형적 행위의 ‘관성’이 나의 작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하다 보니 우연히…’라고 하기에는 나의 의지와 수고가 서운하다. 우연 역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그날의 색’을 만들고 칠하고 건조되기를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그를 기록하는 일상적 습관이 차곡히 쌓여 가능하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내 작업의 안과 밖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게 시간차를 두고 반복적으로 쌓여가는 작업 과정에는 여러 겹의 ‘켜’가 존재한다. 그 ‘켜’에는 인위적인 나의 조형적 행위 뿐 아니라 자연스레 흐르는 ‘시간’이 함께 축적된다.
ㅡ 작가 허명욱